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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REVIEW

열한 계단

머니피아 2018. 1. 3. 18:37


당신을 흔들어 깨운 불편한 지식은 무엇입니까?

분명 시작은 부동산 투자 서적이었다. 2015년의 어느 여름날, '월급쟁이 부자는 없다'는 참으로 오랜만에 '구입'한 책이었다. 대학교 원서 구입 이후 처음이었고 오랜만의 독서라는 생각에 어색해하며 책을 펼쳤으나,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못해 불편했다.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니 불편한 것처럼,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저자의 모습과 생각들이 불편했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원래 누구나 아는 너무나 당연한 말을 들으면 불편하기 마련이지만, 심지어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불편함은 그것을 넘어 불쾌함마저 불러오는 법이다.

어릴 때부터 알아서 책을 찾아 읽어 사뭇 부모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던(?) 나는, 점점 판타지와 무협이라는 환상의 세계에 빠져 현실과의 괴리감을 스스로 즐기게 되었다. 쓸데 없이 멋들어지게 지어 놓았지만 어마어마하게 많은 장서를 자랑했던 대학 시절의 도서관에는 시험 기간조차 가지 않았고, 겨우 묵향이나 빌리러 갔던 것이 다였을 정도로 20대의 독서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그런 내가 부동산 투자 서적을 읽다가 지금은 인문학을 비롯한 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찾아 읽고 있다.  

주변에 다독가들은 역시나 투자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주변에 이젠 없어서, 몰라서 그렇게 느낄지도 모른다. 투자를 하든지 안 하든지에 관계 없이 책이란 보통 불편한 존재일 것이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책의 서문에는 심지어 인간의 뇌는 문자라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독서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한 낯섬을 극복하기 위해 작년에 독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비록 실패했지만, 올해 조금 여유로워진 시간 탓에 꼭 성공해 보려 하는데 리뷰는 참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언제쯤 글쓰는게 편해지려는지...

이 책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으로 유명한 채사장의 또 다른 인문 교양책이다. 지대넓얕 시리즈에서도 책의 구성과 방대한 지식에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이번에는 본인의 이야기와 결부시킨 인문 교양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저자 본인의 내적 세계를 성장시킨 고전들을 소개하고 스스로 어떠한 의문을 가졌으며, 그 고전들을 통해 어떠한 답을 얻었는가를 계단식으로 서술해 놓았다. 이러한 방식은 헤겔의 변증법적 원리를 취한 것으로 나에게 익숙한 세계(정)와 익숙하지 않은 불편한 세계(반)의 만남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합)해 가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저자의 의도이다. 참으로 체계적이고 계단이란 표현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는 워낙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 왔고 그것을 이 책과 위 그림처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지만, 일반적인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저자는 익숙한 책과 불편한 책을 읽는 두 부류가 있으며 어떤 방법이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다만 저자는 불편한 책을 택하라고 권한다. 익숙한 책으로 심도있게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보다는 불편한 책으로 다양한 영역을 모험하며 내적 세계를 성장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의 근거는 슬프게도 인간의 생이 길지 않다는 점이다.

이제는 익숙한 모습이지만, 투자자들의 책을 읽고 머리를 두들겨 맞아 투자의 세계로 온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어느 새 그러한 부류의 책에도 익숙해지게 됨을 나조차 느낀다.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의 칼럼을 보면 부러울때가 많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인사이트와 반박할 수 없는 논리, 깔끔한 문장 등. 그것들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수많은 경험과 다양한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이 체화되어 글 속에 녹여낸 것이니까. 책장을 보니 아직은 압도적으로 부동산 책이 많지만 더 다양한 분야로의 모험도 필요해 보인다. 바로 코앞의 동네 도서관에도 못 읽은 책이 읽은 책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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